임요환은 게임계의 유재석의 팬 이였던 김이나 작사 프로필 나이 신체 키 몸무게 가족 배우자 데뷔 학력
임요환 프로필 나이 신체 키 몸무게 가족 배우자 데뷔 학력
출생
1980년 9월 4일 (41세)
서울특별시 휘장 서울특별시 관악구 봉천동
거주지
서울특별시 휘장 서울특별시 용산구 한남동
신체
180cm, 75kg
혈액형
B형
본관
조양 임씨
가족
부모, 1남 3녀 중 막내
배우자 김가연, 슬하 2녀(임서령[2], 임하령)
종족
테란
부종족
프로토스
데뷔
1999년 SBS 멀티 게임 챔피언십
별명
임요환
종교
천주교 (세례명: 고르고니오)
학력
관악초등학교 (졸업)
봉천중학교 (졸업)
성보고등학교 (졸업)
원광디지털대학교 (게임학 / 학사)
상명대학교 디지털미디어대학원 (예술학 / 석사)
병역
대한민국 공군 마크 대한민국 공군 중앙전산소 병장 만기 제대
(2006.10.09.~2008.12.21.)
대한민국의 前 스타크래프트 / 스타크래프트 2 프로게이머, 現 프로 포커 플레이어 및 T1 소속 방송인.
'스타크래프트는 몰라도 임요환은 안다.'라는 문구로 요약할 수 있는,[11] 2000년대 e스포츠를 상징하는 선수. 본인의 커리어가 곧 한국 e스포츠의 역사라고 해도 될 정도로 황무지이던 세계를 개척해 리그를 흥행에 올려두고 이후 수많은 후배들이 e스포츠 프로게이머로 활동할 수 있게 해준, 모든 프로게이머의 대선배이자 아버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테란이 약소 종족이었던 시절 특유의 바이오닉 컨트롤과 참신한 전략으로 '테란의 황제'라는 칭호를 얻으며 온게임넷 스타리그 2연속 우승 및 양대리그 3회 우승, WCG 스타크래프트 부문 유일한 2연속 금메달, 최고령 개인리그 결승 진출 등 화려한 기록을 세웠다.[12]
게이머 생활 도중 각종 지상파 프로그램에 출연, e스포츠를 널리 알리는 홍보 대사 역할도 했다. 2003년 KBS 아침마당에 출연해 게임 중독자로 오인을 받은 에피소드도 있지만 2006년 파워 인터뷰에 나서면서 업그레이드된 e스포츠의 이미지를 세상에 알렸다. 이 밖에도 출발 드림팀, 브레인 서바이버 등 다양한 예능 프로그램에 나섰고 영화 '도둑맞곤 못살아', KBS 드라마 '사랑은 이런거야' 등에 출연하면서 e스포츠를 알리기 위해 적극적으로 활동했다.
또한 팀 단위 대회에서도 임요환의 SKT T1, 이에 대립하던 당시 KTF 매직엔스는 反 임요환의 상징 인물인 박정석, 홍진호, 강민을 영입함으로서 팬덤 간 경쟁 구도를 심화하며 프로리그 홍보 효과로 이득을 얻었다.
전성기 시절에는 팬 클럽 회원이 60만을 기록했었고, 이후 팬 클럽 회원 수가 40만 명까지 줄어든 모습을 보면서 계속해서 자신을 쇄신해야 할 필요성을 느꼈다고 하기도 했으며 실제로 보여주었다. 다만 20만 명에 달하는 회원들이 "임요환이 싫어서 나가겠다" 하고 나간 건 아니고, 다음 측에서 휴면 아이디, 중복 아이디 등을 대거 정리한 등의 이유가 컸다. 물론 이 경우 또한 '팬'으로 의미를 크게 둘 순 없으므로 마음가짐을 새로 할 동기는 될 수 있다. 스타판에서 은퇴하기 직전 팬 클럽의 회원 수는 약 45만 명.[13]
김가연과 혼인 신고를 2011년 2월에 이미 마쳤고, 2016년 5월 8일 결혼식을 치렀다.
올드 게이머들에게는 부득이하게 벌어지는 현상인 '정리되지 않는 과거 전적'과 더불어 본인의 30대 게이머를 향한 의지로 떨어지는 승률과 손상되는 개인 기록 등의 현상을 모두 겪었는데, 요환 단물을 빨고 싶었던 양대 개인 리그 주최 측은 골든 마우스 제작이나 32강 체제, KPGA의 MSL 편입 등 자신들의 전당에 임요환의 이름을 올려 경력을 유지하기 위해 갖은 선전을 한 바 있다. 예를 들어 골든 마우스는 임요환의 후에 그의 마지막 결승 진출이 될, So1 스타리그 2005 결승 진출로 다시금 우승을 노릴 수 있게 되자 급히 만들어졌고, 신한은행배에서 임요환이 차기 리그 진출권을 확보하지 못하고 듀얼로 떨어지자, 이번 리그부터 24강으로 확대라며 노골적인 임요환 특별법을 만든 바 있다.[14] MBC GAME 역시 2007년 임요환에게 MSL 우승자 배지를 전달하며 그를 MSL 우승자 전당에 올린다. 이러한 노력에도 2006 이후 임요환의 성적 하락은 두드러져, 특례로 얻은 전적은 개인 실력 하락으로 없다시피 하다.
2001년, 2002년, 2004년, 2005년 4년간 결승에 진출하였고, 2005년 온게임넷 스타리그 결승에 다시 한 번 진출하였다. 한동욱은 2006년 우승 이후 2007년에 마지막으로 개인 리그에 진출한 이후로 본선에 올라간 적이 없다. 모 승부조작범도 2007년 온게임넷 스타리그 우승을 차지했지만 2008년 이후 스타리그 36강 진출조차 없었다. 실제로 올드 게이머들 중에 연단위까지 시간 차이를 내면서 결승에 진출한 선수는 2003년, 2004년, 2005년, 2006년, 2007년의 이윤열, 2004년, 2005년, 2008년의 박성준 정도밖에 없다.
콩라인 개념이 생겨나고 준우승을 반복하는 선수들이 생겨나자 준우승을 깔보는 경향이 강해졌으나 온게임넷 스타리그에서 준우승자는 16명 중 2위이고 임요환 시대의 (KPGA) MSL에서도 16명 중 2위이다. 결승 진출이라는 것 자체가 대단히 어려운 것으로, 진출 자체가 대단한 것이다. 임요환보다 케스파 양대 개인 리그 결승 진출을 더 많이 해 본 선수는 이윤열, 이제동, 이영호뿐이다.[15] MSL에서는 얼굴도 못 비췄다는 평판이 있으나 임요환의 최전성기인 2001년엔 MSL이 없었다. KPGA Tour 1차부터 MSL의 전신으로 보아 MSL에 편입시키는데, KPGA Tour 1차 리그도 2002년 2월에 시작. 그리고 2002년부터 열린 MSL의 전신인 KPGA Tour에서부터도 임요환은 우승 1회, 4강 1회로 온게임넷 스타리그에 비해 적다는 것뿐이지 MSL에서도 톡톡히 활약[16]하고 있던 셈. 결코 전적이 적은 선수가 아니다. 거기에다가 2002년 경부터 집중해 열린 각종 이벤트전이나 iTV 랭킹전, 프리미어 리그에서도 결승에 진출한 경험이 있다. 특히 프리미어 리그는 일반 이벤트 대회와 달리 지명도와 실력에서 상위권 선수들만을 모아 진행한 리그이며 상금 규모, 팬들의 주목 또한 남달랐던 대회이기 때문에 이 대회에서 결승에 진출했다는 점은 특히 고무적이다.
온게임넷 스타리그 본선 연속 출전은 9회이다. 최고 기록은 송병구, 타이 기록은 박성준, 그리고 dlqudals & 김택용, 이영호.
2006년 1월 온게임넷 신한은행 스타리그 2005 16강에서 온게임넷 개인 리그 본선 사상 최초로 100승을 달성.# 상대가 바로 송병구인데, 아이러니하게도 송병구는 토스로서 유일하게 브루드 워 온게임넷 스타리그에서 100승을 달성했다.[17]
현재 e스포츠계의 정확한 출발점을 잡을 수는 없으나, 방송 리그가 시작된 것부터가 1999년부터인 데다가, 스타크래프트가 1998년 나왔다는 점, 임요환이 1.5세대 프로게이머로 분류되는 점을 생각하면 1999년경이 활동의 시작이었다고 봐도 무리는 없다.[18] 무엇보다 본인이 말했던 대로 2009년 당시 기준으로 30대 프로게이머가 되었다. 사실 공식 나이에는 언제나 만 나이를 써야 하므로 실제로 30대 프로게이머가 된 것은 2010년이긴 하다. 나머지 한 명은 임재덕. 임재덕 선수는 브루드 워, 스타2 통합으로 봤을 때 30대 프로게이머 최초의 메이저 대회 우승자다.
2012년 10월부터는 슬레이어스의 해체로 '선수'로 활동하고 있었다고 보기는 어렵다. 이후로는 아예 종목을 전환하여 새로운 출발을 하면서 의미를 되새겼다.
시청률에서는 역대 온게임넷 스타리그, MSL, 프로리그를 통틀어 1, 2위를 마크했는데, So1 스타리그 결승전과 4강전이 그것. 최고 시청률인 So1 스타리그 4강전의 기록은 1.73%이다.[19]
브루드 워 개인 리그 10-10 클럽 달성 기록을 가지고 있다(온게임넷 스타리그 본선 14회 진출, MSL 본선 10회 진출).
김가연 프로필 나이 신체 키 몸무게 학력 데뷔 자녀
본명
김소연
출생
1972년 9월 9일 (49세)
광주광역시 남구 봉선동[1]
본관
광산 김씨
신체
164cm, 44kg, AB형
학력
동아여자고등학교
한양대학교 무용학 학사
데뷔
1994년 미스 해태 선
가족
부모[2], 남동생[3]
배우자
임요환(2011년-현재)
자녀
장녀 임서령(1996년생)[4], 차녀 임하령(2015년생)
소속
문엔터테인먼트
대한민국의 現 배우겸 前 코미디언.[5] 연예계 바깥에선 게임단 구단주와 게임기획자로도 활동했다.
배우로서 활동이 가장 인지도가 높아 다들 김가연 하면 배우라고 다들 생각한다. 상당히 독특하고 다양한 이력이 있으며 특히 게임 관련 부분은 2008년 스포츠 관련 행사에서 만나 현재 그녀의 남편이 된 임요환의 영향이 크다고 할 수 있다.
통칭 임요환의 그 분.테란의 황후 홍진호가 나 혼자 산다에서 "저희들끼리 말하는 '그 분'이라고 불리우는 사람"이라고 말한 걸 보면 임요환의 주변 사람들도 그 분이라고 부르는 듯.
1995년에 결혼했다가 1998년에 협의 이혼을 했으며, 전 남편과의 사이에서 딸이 1명 있는 싱글맘이었으나 이후 2011년 2월 임요환과 혼인신고를 한 것이 알려졌다.[6] 2015년 8월 1일 둘째를 낳았다. 태명을 마린이라고 지었고,[7] 출산 후엔 임하령이라고 지었다.
한때 신해철이 만들었던 싸이렌 엔터테인먼트에 있던 적이 있다. 당시 싸이렌에 유일하게 소속되어 있던 배우였으며 회사는 시원하게 망했다(...).
현재는 사라진 스타크래프트 2 프로게임단인 SlayerS의 前 구단주다.
1994년 미스 해태 선발대회에서 미스 해태 선으로 뽑히며 처음 데뷔하였고 같은 해에 MBC 5기 공채 개그맨으로 방송에 데뷔. 우리가 알고 있는 그 박명수가 한 기수 선배며 컬투와는 동기였다. 당시 본인은 연기자를 지망하고 있었으나 개그도 하나의 연기이며 들어간 이후에 부서를 옮기면 되는 것으로 생각했다고 한다. 1999년 MBC 드라마 《우리가 정말 사랑했을까》(배용준, 김혜수 주연)에 출연하면서 연기자로 전업하였다.
이후 2001년 MBC 설날 특집극 《며느리들》에 잠깐 출연한 후 2002년 KBS 2TV의 드라마 《골목안 사람들》에서 강현지 역할을 맡았으며 2003년 초 사극 《장희빈》 출연 도중 건강 악화를 이유로 중도하차하였다. 2004년에는 MBC 드라마 《왕꽃 선녀님》에서 한옥진 역을 맡았으며 SBS 드라마 《파리의 연인》에서는 김정은이 근무한 극장의 상사로 나왔다. 2012년까지 JTBC 사극 《인수대비》에 계양군 부인 역으로 출연했다. 2013년에는 희대의 개막장 드라마 루비반지에 출연해 정루나를 철저히 배척하고 나인수를 흠모하는 츤데레 재벌가 딸 배세라를 연기했으며 2020년 기막힌 유산에서는 영악한 둘째며느리 컨셉으로 승승장구중.
드라마뿐만 아니라 영화에도 자주 출연하였는데 2000년 반칙왕에 송강호가 짝사랑하는 동료직원으로 나왔고 2004년 영화 《홍반장》에서 간호사 역으로 출연. 훌륭한 연기 실력을 보여 제41회 대종상 영화제 여우조연상을 받았다. 그 후 《화려한 휴가》, 《판타스틱 자살 소동》 등의 영화에 출연하였다.
중년(?) 배우로는 드물게 초기부터 예능 프로그램에도 자주 모습을 보였는데 2000년 이홍렬의 "TV 대발견"에서 보조MC를 맡은 것을 시작으로 KBS 2TV의 "자유선언 오늘은 토요일", MBC의 "목표달성 토요일", KBS 1TV "사랑의 리퀘스트" 등에 출연하였다. 이후에는 휴식기를 보내면서도 임요환과 함께 MBC 예능프로그램 "놀러와", KBS 설날특집 연예인 복불복 마라톤 대회 등에 잠깐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2013년에는 김호진등이 진행하는 올리브 TV의 연예인 조리 배틀 프로그램인 키친 파이터에 참가하여 최종회까지 생존했다. 우승은 못 했지만 특히 한식 쪽으로 매 회 뛰어난 조리 실력을 보여주었다.
3. 재혼 후[편집]
임요환과의 열애설이 터지면서 인터넷 상에서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이 때 마침 스타크래프트 승부조작 사건이 막 터졌을 때라 열애설로 조작 논란을 덮으려는 임요환의 몸빵이라는 이야기가 나오기도 했다.
후에 헌집 새집에서 밝히기로 게임 관련 행사에서 만났다고 한다. 원래 참여하게 되있던 연예인 게임단의 단장인 윤정수가 해외 일정으로 행사에 참여하지 못하게 되어 부단장인 김가연이 대신 참가해서 임요환을 만났다고 한다. 김가연의 말에 따르면, 이 행사 때 직접 스타크래프트로 대결하는 시범 경기도 있었는데, 임요환은 그 와중에도(?) 승부욕을 발휘해서 핵을 13방을 날렸단다. 그러자 김가연은 그 승부욕에 오히려 호감을 얻었다고.
결국 열애설을 공식적으로 인정한 뒤로는 스타판에 관심이 많은 이들에게 충격을 안겼다. 통칭 그 분의 그 분(…). 가끔 예능 방송에 나가기도 하는데 거의 똑같은 레퍼토리로 임요환에 관한 이야기밖에 안 한다. 이런 점 때문에 스타판에선 싫어하는 사람도 꽤 있다. 예능 방송에서는 그 외에도 연상연하 커플이라 주목을 끄는 듯.
김가연이 임요환보다 8살 연상으로 나이차도 많이 나는 데다 딸까지 있는 이혼녀였던지라 열애 사실이 밝혀진 뒤로 꽤나 시끄러웠지만 본인들은 별로 개의치 않는 듯. 다만 좀 더 젊게 보이려고 옷차림에 신경 쓰게 됐다고 한다. 신문지상의 인터뷰에서는 옷가게 주인이 이모와 조카 사이냐고 물어보았다고 하며 이에 상당히 열받아 더욱 옷차림에 신경을 쓰게 되었다 한다. 다만 나이가 나이인지라 짧은 치마를 입으면 무릎이 시리다고 한다.
열애설을 인정한 뒤로는 임요환과 같이 공식석상에 모습을 비추는 모습이 부쩍 늘어나면서 화제가 되고 있다. 얼굴이 상당히 작아서 옆에 서있는 임요환이 디버프(?)를 많이 받는다. 그 백미 중 하나는 켠김에 왕까지. 임요환은 여기서 많이 망가진다.
김가연: 나에게 화낸 거야? 그런 거야?
임요환: 아...아니 그...그게...
2010년 10월 10일에 있었던 GSL 예선에도 응원차 모습을 보였고 이후로도 임요환의 GSL 경기 때마다 응원하러 오곤 한다. 또한 이러한 모습이 포모스 등의 언론의 기사에 자주 노출이 되는 편이다.
Sony Ericsson GSL Jan.에서 임요환이 박상익과의 경기에서 선보였던 불곰 드랍은 김가연의 아이디어였다고 한다.
tvN 채널에서 "임요환의 날개"라는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을 방영한 적이 있는데 김가연이 어떻게 내조를 하는지 잘 보여준다. 식사는 물론이고 의상, 심지어는 연습실 알아보기와 스폰서 계약까지 전부 임요환을 돕는다. 그것도 거의 매일. 노는 걸 보면 원래 티격태격하면서 노는 듯하다.
김이나 프로필 나이 가족 직업 배우자
출생
1979년 4월 27일 (42세)
가족
배우자 조영철, 이복동생 케빈 킴
직업
작사가
소속사
미스틱스토리
사진=조영철 인스타그램
케빈 킴
(왼쪽부터)윤종신-엄정화, 조영철-김이나 분. /김이나 인스타그램
1. 개요
대한민국의 작사가. 2003년 무렵부터 활동을 시작했으며 당시 작사가로서의 경력은 길지 않지만 2008년부터 2010년까지의 실적이 좋은 편이다. 히트곡이 300여개이며 저작권료 수입 1위로 오르기도 하였다. 비단 내가 네트워크 가수의 곡뿐만이 아니라 다른 여러 소속사의 가수들 노래에 작사가로서 많이 참여하였다. 브라운 아이드 걸스의 노래가 대박이 난 이후 외부 작업이 더욱 늘어난 편. SM엔터테인먼트, JYP엔터테인먼트 등 대형 기획사 가수들부터 가왕급 가수들의 곡까지 다양하게 참여했다.
작곡가 김형석과의 콤비도 꽤 유명한데, 임재범의 새 앨범을 김형석 작곡가가 맡아 거기에도 작사로 많이 참여했다. 2003년 성시경의 정규 3집 작업 중 일부(10月에 눈이 내리면)를 김형석과 같이 작업한 바도 있다.
하지만 역시 김이나 하면 이민수 작곡가와 콤비를 이루어 브라운 아이드 걸스와 아이유, 가인의 노래들을 히트시킨 것으로 유명하다.아이유와는 2010년 아이유의 첫 메가 히트곡 잔소리를 시작으로 전 국민적 사랑을 한 몸에 받은 곡인 아이유의 좋은 날과 정규 2집 타이틀곡 너랑 나, 정규 3집 타이틀곡 분홍신 등 수많은 히트곡들을 이민수 작곡가와의 콤비로 이루어낸 것.또한 이 두 사람은 아이유와 브라운 아이드 걸스, 가인의 음악 세계관을 구축하는 데 가장 큰 도움을 준 콤비인데, 히트곡은 거의 이 두 사람이 어떤 방식으로든 참여했다.
김이나 작사가가 브라운 아이드 걸스의 앨범에서 손을 뗀 것은 2집 때 뿐이다. 그 이후는 항상 함께했다. Love, 어쩌다, 아브라카다브라, Sign, Sixth Sense 등. 이는 모두 김이나의 작품이다. 3집부터의 타이틀 곡은 모두 김이나의 작품이라고 보면 된다. 그 외의 잘 알려지지 않은 수록곡들의 가사 역시 자주 맡았다. 이는 가인의 솔로 활동에서도 마찬가지. 특히 가인의 솔로 4집 미니앨범 'Hawwah' 에서는 '리릭 프로듀서' 라는 역할을 맡아, 가사를 통해 앨범 전체 컨셉에 통일성과 스토리를 부여하는 데 큰 역할을 하기도 했다.
박효신과도 친밀한 사이로 7집의 가사를 공동 작사했다. 이후로 8집 작업에도 함께하고 있다.
박효신은 개인적으로 김이나에게 연락하여 별밤 신청곡본인곡을 부탁했었다 (# 콘서트 1주년). 밤편지 시절부터 박효신을 게스트로 섭외하고 싶어했고 출연 약속을 했다고는 하는데 과연 언제쯤 나올 수 있을지...
2. 생애
어렸을 때 부모가 이혼했다. 양육권을 가진 어머니가 일을 했기 때문에 주로 외조부모 손에 컸다. 손녀여서 그런지 많은 칭찬과 사랑 속에 커서 칭찬 받는 데에 익숙해, 어느 순간부터 칭찬을 못 받으면 굉장히 불안해한다고 한다. 2018년에도 90대 연배의 외조부모가 살아계셔 지금도 연락을 자주 한다고.
고등학교 때 아버지가 있는 미국에 가서 우드브릿지 학교를 다녔으며, 대학교에서 미술사를 전공했다고 하는데 더 알려진 바는 없다. 미국에서 대학 다닐 때도 한국 음악부터 팝송까지 다양하게 들었다. 본래 작사가를 꿈꿔온 건 아니지만 음악 쪽 일을 지망해서 관련된 직종을 파다 보니 작곡가에 도전했다고 한다. 물론 깊게 판 정도는 아니고, 회사 다니면서 간간이 노력하는 수준으로 한 정도라고 한다. 그러다가 작곡가 김형석의 제안으로 작사가의 길을 걷게 되었다고 한다.회사를 다니며 작사를 겸업하다가 이후 로엔엔터테인먼트, YG엔터테인먼트에서 기획과 A&R을 담당하기도 했다.
혹자는 이민수 작곡가와 결혼한 것으로 아는데, 그녀의 남편은 미스틱 엔터테인먼트 산하 에이팝 엔터테인먼트 제작 이사 프로듀서 조영철이다. 이민수 작곡가와는 단지 훌륭한 작업 콤비다.
3. 작사 스타일
본인도 언급했듯이 가사를 들으면 '캐릭터 정립'과 가사가 '원곡의 분위기와 성격'에 맞아 떨어지게 만드는 데 상당한 공을 들인 것이 느껴진다. 인터뷰에서 가사를 쓰기 전에 먼저 캐릭터를 잡는 편이며, 일단 그 캐릭터를 잡으면 굉장히 수월하게 작업을 진행한다고 말했다. 김이나가 유명해지는데 그런 컨셉 위주의 가사가 히트한 것이 크게 작용했다.
가사를 쓸 때 여러 명의 아티스트에게 영감을 받는다고 이야기했는데, 주로 영감을 받는 아티스트는 G-DRAGON과 타블로라고 한다. 타블로와 꿈꾸는 라디오에서 밝힌 바로는, 가사의 스타일은 GD, 문학적 표현은 타블로에게 영감을 받는다고 말했다. 공교롭게도 두 명 모두 래퍼이다. 힙합과 랩을 하는 음악가들에게서 볼 수 있는 특징적인 작사 스타일이 김이나 본인에게도 영향을 주는 듯 싶다. 타블로에게 타블로의 솔로 앨범인 열꽃에서 자신의 상처를 어떻게 하면 냉철하게 바라볼 수 있냐면서 궁금해하기도 했다.
샤워를 하다가 느끼는 행복감에서 영감을 받아 조용필의 걷고싶다 가사를 쓰게 되었다고 언급한 적도 있다.
별일 없이 사는 듯 하다가 문득 행복이 실시간으로 느껴지는 순간이 있다. 이 곡의 가사를 쓰기 며칠 전 샤워를 하는데, 평생 그런 시선으로 본 적 없었던 샤워기 물줄기가 그렇게 반짝거리고 예뻐 보였다. 수압과 수온이 적당한 것이, 이게 바로 행복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사실 이 곡의 시발점이라고 하기엔 너무나 보잘것없어서 창피할 지경이지만, 그렇게 ‘사소한 순간’이 행복으로 느껴질 때 나는 그 어떤 대단한 순간들보다 내가 참 행복한 사람이라는 느낌을 받는다. ‘살에 닿는 듯한 행복’은 살면서 그리 자주 오진 않지만, 이 또한 훈련하다 보면 좀 더 자주 느낄 수는 있다고 생각한다. 어쨌든 그런 순간은 나만 느끼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하기에, 나는 그 사소한 행복의 찰나를 바탕으로 이야기를 시작했다.
- '김이나의 작사법' 中
4. 인지도
우리 결혼했어요에 출연한 이후 대중적인 인지도를 가지게 된다. 인터뷰에서 밝혔듯이 작사가라 하면 왠지 꾀죄죄하고 어두운 곳에 틀어박혀 머리를 쥐어뜯는 모습을 떠올렸던 사람들에게 TV에 출연해 충공깽을 선사하는 미모를 자랑하며 강한 인상을 남겼다. 물론 그 후 밀어닥친 미니홈피 일촌 신청의 홍수 앞에서 '나는 연예인이 아니니 자제해 달라'라는 말을 남겨야 했지만.
예전부터 다양한 작곡가와 작업한 만큼최근에는 조영수 작곡가와도 작업을 몇 곡 하고 있다. 헬로비너스의 'Venus', '오늘 뭐해', 다비치의 '한 사람 얘기' 등. 그리고 가왕 조용필의 앨범에도 참여하였다. 걷고 싶다의 가사가 바로 김이나 작사가의 작품이다. 이에 대해 남편 조영철 프로듀서가 상당히 자랑스러워했다.
후일담을 듣고 자랑스러워졌다는 그중에 그대를 만나에 대해서 얘기를 꺼냈는데 이선희 15집 30주년 앨범에 김이나가 단독으로 작사한 곡이 타이틀 그중에 그대를 만나로, 후일담으로 이제는 나는 더는 설레고 사랑에 관한 섬세하고 이런 거에 대해서 스스로 동의가 안 되어서 직접 작사하시고 그랬는데 마지막에 그중에 그대를 만나를 받고 어 내가 동의가 되더라고 말씀해주시며 유일하게 외부작사가가 작사한 곡이 되었다고 밝혔다. 또 김이나가 하는 라디오인 김이나의 별이 빛나는 밤에서 나오셔서 칭찬을 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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